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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일기 쓰는 사람

by 헬로덱 2007. 10. 30.
초등학교 방학이 끝날 때 즈음해서 밀린 일기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쓰며 도대체 이날  날씨는 어땠느냐며 날씨만이라도 쓸 걸 하는 후회를 하면서 기껏 머리를 짜내어서 쓴 일기는 5줄을 넘지 못하고 마무리 아닌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모든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은 그 시절에 그때에는 너무나도 일기 쓸 '꺼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즐거움은 그냥  즐거움으로 느끼면 될 뿐, 글로 남기는 것에는 의미를 두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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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함께한 일기장

초등학교 이후로 고등학교 때 컴퓨터로 잠시 썼던 일기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일기를 한동안 쓰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군대로 생각된다. 훈련소를 들어가서 받았던 여러 피복과 보급품들 사이에는 '수양록'이란 것도 있었다. 훈련소마다 중대마다 다르지만 중대는 의무적으로 수양록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일기를 쓰기보단 편지를 쓰기에 바빴기에 수양록은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폐품 통으로 들어 가버렸다. 군 생활 초기에 바쁜 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여유가 생긴 후에는, 군에서 내가 하는 다짐 또는 잡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도 나에게 커다란 수첩이 하나 들어왔고 나의 일기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날마다 꼬박꼬박 쓰자고 마음먹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 편하게 생각날 때 쓰자!'라고 마음을 바꾼 후에는 하루에도 두 번씩 쓰는 일도 생길 만큼 자주 쓰게 되었다. 혼자서 있는 시간에 뭔가 끄적일 것이 있다는 것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만큼의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의 그 즐거움이다. 몇 년이 아니더라도, 일주일 지난 일기를 들춰보는 일은 상당히 신선하고 재밌고, 가끔은 유치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일기의 대부분 내용은 밝지 않았던 것 같다. 군에서의 답답함과 옛 생각들로 범벅이 된 글들 사이에 엄청난 다짐과 각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상황만 뛰어넘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간이었다. 지난 일기를 들춰보는 또 하나의 매력이 바로 이 지난 다짐들을 보는 것이다. 엄청난 느낌(또는 술김에)을 받아 했던 다짐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알게 되었을 때는 부끄러움이 다시 밀려오곤 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지난 일기를 펼쳐보곤 한다. 그럴 때면 언제나 ‘이전의 생각들을 어느새 잊고 살았구나..’ 느끼게 된다.

사실 요즘은 일기를 잘 안쓰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하다 보면 가만히 일기 쓰기 위해 책상에 앉기란 참 어려 일이다. 일기장 겸 낙서장 해서 들고 다니던 수첩(?)도 이제는 무겁다는 핑계로 가방에서 나와 책장에 자리잡고 있다. 가방에서 얼마나 뒹굴었는지 이제는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 다시 방 책장에 자리 잡은 옛 일기장을 꺼내려 한다.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일들이 펼쳐 질 것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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